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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9-12-03, 22:06 ]


(사이버자야=쿠알라룸푸르) 김지현 기자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유명한 말씀이다. 1919년 3월 1일, 그 날의 그들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 

지난 11월 16일(토) 오전 말레이시아 사이버자야에 위치한 토요 한국인학교에서는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말레이시아 지역본부(코윈 말레이시아)가 주최하고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로서 우리 독립운동 역사에 관한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강의에 앞서 강당에 모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조선대학교 태권도학과 공연인 ‘100년전의 봄’(유튜브 링크 http://youtu.be/AL-1Zlp1sc8)을 함께 시청하였는데 이는 암울했던 민족의 수난기와 격동기의 역사를 살다 갔던 영원한 광주의 독립운동가 윤형숙 열사의 삶을 극화한 이야기로, 역동적인 태권무, 판소리, 아리랑과 함께 펼쳐지는 애국향연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이어서 강사로 나선 여규조 교사의 본 강연회가 진행되었다.

여규조 교사는 먼저 “삼일절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 중요한 날이다. 1949년 10월 1일 대한민국 정부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면서 3월 1일을 국경일로 정했다”고 하고, “독립운동의 산실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중국 상해에서 한국독립운동자들이 수립했던 임시정부의 명칭이다. 상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민족운동가들의 모임, 신한청년당이 3•1 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의 모임,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4월 11일 정식으로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하는 민주 공화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구성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적 처리로 인해 상대적으로 만주와 연해주(沿海州)의 독립군단체는 일제와의 독립전쟁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서 삼일절의 의미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했다. 

또한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등 각기 다른 독립운동가에 대한 몇 가지 호칭의 차이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여 교사에 따르면, ‘의사’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항거하다가 의롭게 돌아가신 분들을 일컫는다. 성패와 상관없이 무력을 통해 적에게 대항한 인물을 일컫는다. 대표적 인물로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가 있다. 그리고, ‘열사’란 나라를 위해서 비폭력 투쟁으로 저항하다 의롭게 돌아가신 분들을 가리키는 호칭으로서, 강력한 항의의 뜻으로 자결을 선택한 분들도 여기 포함되며, 유관순, 이준 열사 등이 있다. 

이어서 ‘남도의 유관순’이라고 알려진 ‘윤형숙 열사’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왜적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왼팔과 오른쪽 눈도 잃었노라. 일본은 망하고 해방되었으나 남북•좌우익으로 갈려 인민군의 총에 간다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이는 순국열사 윤형숙(1900.09.13~ 1950.09.28)의 무덤 묘비석에 새겨진 글귀다. 만세운동 중 일경에 왼팔이 잘리고 눈까지 잃으면서도 만세운동을 부른 그 투지를 누가 감히 흉내 낼 수 있을까. 

그는 “왼팔은 조국을 위해 바쳤고 나머지 한 팔은 문맹자를 위해 바친다”는 신념으로 불구의 몸을 이끌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윤 열사에게 닥친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방된 조국, 좌우 이념의 갈등 속에서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1950년 9월 28일 밤, 서울이 수복되자 퇴각에 나선 인민군은 윤형숙 열사, 손양원 목사 등 기독교인을 포함한 양민 200여 명을 여수시 둔덕동으로 끌고 가 학살했다. 

독립을 외치다 잃은 왼팔과 실명된 눈을 평생 끌어안고 어린이 교육에 힘써온 윤 열사의 삶은 사후 63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인정 받아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여규조 교사는 김마리아 열사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2•8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조선청년독립단 대표 11명 중 여학생은 없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던 김마리아 열사는 침체한 여성 독립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기존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바탕으로 조직을 전국 규모로 확대하였으며, 1919년 9월 모교에서 비밀리에 황에스터 등 20여 명의 여성 지도자들과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다시 결성하고 회장에 추대됐다. 

여성교육이 전무했던 시절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대한 독립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 여권 신장을 위해 헌신한 김마리아 열사.

1919년 3월 1일 1000여명의 여학생은 YMCA 등과 연계해 만세 시위에 나섰으며,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100여명의 회원을 꾸려 군자금을 모으고 전국에 조직망을 설치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여성독립운동뿐 아니라 여권신장운동의 신기원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292명뿐으로 전체 국가유공자의 1.9%에 불과하다. 최근 들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을 기리고 역사적 조명을 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해 광복절 당시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돕는 일이 많아 발굴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늦었지만 여성 독립운동가를 더 많이 찾아내 더 많이 현창시키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추적하여 책을 쓰고 있는 이윤옥 작가도 수많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여성들도 남성과 똑같이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니 그 예우도 같아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했다. 

강연 후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가슴 한 켠에 깊은 감동을 담았다며, “다시 한 번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적인 삶을 떠올리며 오늘 우리나라가 있음을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코윈(회장 정임)은 전 세계 한인여성의 연대를 위해 2001년 출범하여 올해로 제19회 행사를 맞이하였으며, 지금까지 국내외 60개국 8,730여 명의 한인여성이 코윈을 매개로 지역과 국경을 초월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였고 성평등 실현을 위한 지구촌 주요 이슈에 대해 토론하였다.

행사를 후원한 여성가족부 진선미 장관은 “3.1 운동은 전 국민이 함께한 독립운동이었으며, 독립을 향한 열망 앞에 성별의 장벽은 없었다”면서, “우리 한인여성은 사회의 주체로서 누구보다 뜨겁게 만세를 외쳤고, 관습과 불평등을 뛰어넘어 평등한 새 시대를 위한 변화를 이끌었다. 2019년 우리는 성평등 실현을 위한 길 위를 다 함께 걸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그 길의 한가운데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내다보려 한다. 과거 100년을 이어받아 새로운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제19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 행사에 여러분이 함께 해주시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 mimi.newprost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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