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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7-08-10, 16:34 ]
“한국-말레이시아 우호관계 증진에 보탬되는 일 하며 여생을 살고파”

(왼쪽부터) 나즈리 빈 압둘라 아지즈 말레이시아 관광부 장관, 다틴 엔지 테 여사, 다툭 이진복 회장


말레이시아 문화관광부 고문 10주년(2007-2017) 감사패
(쿠알라룸푸르=코리안프레스) 민양희 = 모두들 각자의 사업장에서 분주한 도심의 화요일 오후,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여행업 종사자들의 위상을 높여주겠다며 대규모 연회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었다. 지난 7월 25일 쿠알라룸푸르 살로마 극장식 식당에서 <한국인 인바운드 투어 운영사 연례만찬>를 개최한 다툭 이진복 회장이 바로 그다.

200여 명의 초대 손님이 참석한 이 날 행사에는 나즈리 빈 압둘라 아지즈 말레이시아 관광부 장관, 미즈자 모하마드 타이얍 관광청장, 유현석 주 말레이시아 한국대사 등 귀빈들이 자리를 함께 했으며, 이진복 회장은 이 자리에서 말레이시아 문화관광부로부터 지난 10년간(2007년~ 2017년) 고문으로서 한국-말레이시아 양국간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교류 증진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을 치하하는 기념 감사패를 받았다. 

에어아시아 항공 한국 유치의 숨은 공로자이며, 중국계 아내와 함께 한국-말레이시아 양국 간 교류를 위한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는 다툭 이진복 회장(Infotech Lee Sdn Bhd)을 만나보았다.

특별한 인연의 시작

이진복 회장(李鎭福 . 만 79세)은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3대 판사를 낸 친가뿐만 아니라 모친의 조모가 조선시대 ‘여걸’로 불리는 신정왕후(조대비)인 으리으리한 양반 집안이었다. 경기도에서 태어났지만 인천에 뿌리를 두고 자란 그는 요즘의 청춘들과 다를 바 없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한때 ‘인천 꼬마’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부모님과 가족을 추억하며 소중히 간직한 외증조모 관련 기사
“당시에도 인천은 배도 많이 들어오고 교류가 활발한 곳이었기 때문에 많이들 싸우고 그랬지요. 그래도 난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못된 짓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웃음)” 

젊음의 패기에 두려울 게 없었던 시절의 그를 잠잠히 만든 것은 친형의 죽음이었다.

“술을 좋아했던 형이 갑작스럽게 취중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것이 반성하고 마음잡는 계기가 되었다”는 그는 그간 쌓아온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한볼링협회 부회장이자 인천지구 회장, 국제봉사단체인 키와니스(KIWANIS) 클럽의 인천지구 회장 등으로 활동을 하며 대만, 일본, 싱가포르, 호주, 말레이시아 등지로 오고 가게 되었다. 

해외로 터전을 옮기게 된 것은 한국에서 금융사업을 운영하던 중 부도를 맞으면서였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돈 없으면 살기 힘든 나라였고, 호주는 외국인이 사업하기는 좋지만 정착하여 제 2국민으로 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대만은 진취적이고 대국적이며 사람들이 좋은 곳이었지만, 결국 말레이시아와 인연이 있었던 거죠.” 

1984년 4월 말레이시아로 이민을 하여 당시 현지에 많이 부족했던 CCTV 보안시스템을 만다린오리엔탈 호텔이나 Lot10 등 유명 호텔과 쇼핑몰 등에 공급하는 사업을 하던 중 당시 총리직에 있었던 마하티르 전 총리가 1994년 콴탄에 다국적 전자단지 MEC(Malaysia Electronic Corp)를 조성할 때 KDC(한국전자), 신일선풍기, 풍년밥솥, 한창 등 다양한 한국 기업을 유치해 내면서 이진복 회장은 현지에 탄탄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말레이시아 정계 고위 관리들과 인맥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당시에 교통부 차관이었던 도널드 림 시앙 차이 전 재무부 차관이나, 당시 셀랑고르 주 경찰국장이었던 현 칼리드 아부 바카르 경찰청장과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좋은 벗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관광부 유일의 외국인 고문



PJ의 랜드마크인 Menara TM(텔레콤 타워)의 대우건설 수주나 한화큐셀의 말레이시아 생산법인의 성공적인 진출을 지원한 등 정계 고위 관리들과 맺은 그의 네트워크는 종종 한국인들에게 도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2007년 1월 말레이시아 문화관광부의 고문직을 맡으면서 더욱 확대되고 탄탄해져 갔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말레이시아 관광부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장.차관이 모두 바뀌었지만 여전히 매 2년마다 고문으로 재임명되어 벌써 10년째 현지 고위 관리들이 방한할 때 항상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또 동시에 한국 사람들에게 말레이시아를 알리며 현지 이민프로그램인 MM2H(말레이시아 마이 세컨홈)를 홍보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진복 회장은 관광부 고문으로서 말레이시아 국적 저비용항공사인 에어아시아엑스가 인천과 부산에 취항하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아즈란 오스만 라니 에어아시아엑스 CEO는 “한국으로의 사업 확장을 통하여 양국 간 여객 교통 증가로 관광과 무역이 향상되어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에어아시아를 대변하여 초기 한국시장 평가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이진복 회장에 감사 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애초 저가항공사의 취항을 허락하지 않았던 인천 공항공사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2011년 1월 한국 국토해양부의 승인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 어느 때 보다 열정과 수고로 임했던 일이었기에 기쁨과 보람도 특별했다. 

한편, 그는 역사와 관광의 도시, 말라카 주(州)의 전자단지인 MITC에 한국인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한데 대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2012년 10월 말라카 주로부터 ‘다툭’(Datuk) 작위를 받기도 했다. 이진복 회장은 이에 대하여 “사실 혼자만의 기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라카 주에서 양국 간 교류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기여 했다고 판단하여 주변 추천을 받아 작위를 받게 되었다는 점이 감사하고 의미 깊다”고 전했다. 

한국을 말레이시아로 알리는 홍보대사



이진복 회장은 말레이시아로 한국 관광객과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의 요소요소를 말레이시아로 알리는 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예전에 비하여 한국을 방문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또 말레이시아를 찾는 한국인도 늘어났습니다.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좋은 인상을 갖고 돌아가는 한국인을 보는 것, 한국을 방문해 좋은 인상을 갖고 돌아온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제게 큰 기쁨이에요.” 

지난 한 해 동안 말레이시아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약 44만 명(관광수입 15억 링깃 초과)으로 전년대비 5.5% 증가했다. 이러한 추세로 내년에는 약 5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목표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한국을 찾는 말레이시아 관광객의 규모는 현재 연간 37명 수준이며 마찬가지로 점차 증가 추세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갈수록 두 국가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점점 더 그 관계가 깊어진다.

대명그룹, 제주도의 명예 고문을 지냈고, 현재는 청양군, 영주시, 부여군, 세계 컨티넨털호텔의 홍보 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진복 회장은 “양국의 사회 . 경제 . 문화 . 관광의 교류 등에 있어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양국 우호관계 증진에 보탬이 되고, 의미 있는 일들을 하면서 남은 여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다. 

말레이시아 관광부로부터 ‘최우수 한국여행사 상’을 받은 SG 투어 (So Good Travel & Tour Sdn Bhd). 사진은 오른쪽부터 주재건 SG투어 소장, 강성문 SG투어 대표, 나즈리 빈 압둘라 아지즈 말레이시아 관광부 장관, 다툭 이진복 회장, 다틴 엔지 테 여사


“나누는 기쁨...서로에게 좋은 일 할 수 있길”

그는 인터뷰 내내 사회 기여와 봉사에 대하여 강조했다. “특별한 것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위해 좋은 일들을 좀 하고 살자”는 것이다. 

“얼마 전에 아들 딸과 동생이 살고 있는 호주 퍼스에 다녀왔어요. 거기에 가니 한국인 동포 노인회가 아주 활성화되어 있더라구요. 동생이 70대 후반인데 거기 회장직을 맡고 있어서 가보니 한 250여 명의 노인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며 밝게 활동할 수 있는 노인회관이 마련되어 있더라구요. 말레이시아에도 60~70명의 노인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생각나더라구요. 어떤 개인이 이룰 수 없는 일이기에 부럽고 아쉬웠습니다.”

나이 든 분들의 해외 생활은 더 고달프고 적적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마음이 더 쓰인다고 했다. 

“MM2H(말레이시아 마이 세컨홈) 프로그램으로 넉넉하게 은퇴이민을 오는 경우에도 꼭 현지에서 소일거리 하거나 정기적으로 활동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지 미리 알아보고 오는 것이 좋아요. 휴식하고 골프 치고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잘못하면 외로움으로 오히려 마음의 병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또, 남편들이 한국에 있는 기러기 엄마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들을 위한 활동도 정말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적적하고 스트레스도 받고 하는데 마땅히 할 게 없겠죠. 그래서 엄마들끼리 밤 늦게 가라오케도 가고 하는 걸 알아도 개인적으로는 뭐라 얘기할 수도 없고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렇잖아요. 한인회나 여성회 등 단체를 중심으로 즐겁고 교육적인 활동들을 만들거나, 자선바자회 등 봉사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함께 나눈 것은 그 기쁨이 큰 만큼 두고두고 기억되며 가슴을 따뜻하게 하기 마련이다. 1965년경 인천 가좌동에 있던 한 천막교회에 교회건물을 지어드렸던 일, 젊어서 필리핀에 봉사활동 갔던 일... 한 동안 매년 자선바자회를 열어서 한인타운 ‘암팡’ 경찰서의 경찰 미망인들을 지원했던 일에 늘 앞장 서서 함께 했지만 요즘은 몸이 안 좋아 잘 만날 수 없는 위정림 전 여성회 회장, 봉사활동이나 한인행사에 늘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물품을 제공해 주는 KMT Trading의 이마태오 대표 등에 대해 언급하며 이진복 회장의 목소리는 들뜨고 힘이 실렸다.

무엇보다도 그의 ‘조금 특별한’ 인생이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고 있는 것은 ‘예쁘고 정말 착한 여자’라고 소개하는 아내 엔지(Datin Angie Teh) 여사, 그리고 종교 생활인 듯 했다. 

“남들은 제가 소개하고, 추천하고 종종 고위직 인사들과 만나며 지낸다고 해서 대단한 사례를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예전에 사업할 때는 돈을 부족함 없을 만큼 벌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지금은 제가 못 벌어도 아내가 본인 사업을 운영하며 지원해주니 저를 필요로 하는 일에 도움을 드리며 살 수 있지요. 해외 생활하면서 한 주간 열심히 살고 주일 하루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나님 말씀 들으러 교회 가는 것, 정말 소중한 시간이에요. 다른 분들도 그런 기쁨 나누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abc@koreanpress.net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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